힌두교
'힌두(Hindū)'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거대한 물'을 가리키는 단어인 '신두(Sindhu)'에서 유래했다. '거대한 물'이란 '바다'나 '큰 강'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신두'가 가리키는 '큰 강'은 바로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강이다.[12] '힌두'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바로 고대 페르시아인들의 기록인데 이들은 '신두'라는 단어를 페르시아어 단어인 '힌두'라고 불렀다.[13] 기원전 515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다리우스 1세는 인더스 강 유역 일대를 정복하여 그 일대를 '힌두'라고 칭했고 그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 대에 '힌두'라는 단어는 기존의 범위인 인더스 강 유역을 넘어 동쪽으로 갠지스 강 유역 일대까지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즉 '힌두'는 곧 데칸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 사이에 놓인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 유역 일대, 나아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힌두교란 '힌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라는 뜻이다.
힌두교의 원형은 브라만교로 아리아 민족의 다신교가 발전한 형태였다. 참고로 고대 인도의 천공신 드야우스는 그리스의 제우스, 라틴어의 데우스, 북유럽의 초기 주신인 티르[14]와 그 어원이 같은 점에서 그 오래된 뿌리를 엿볼 수 있다.
브라만교가 발전 및 정립된 게 힌두교이며 고대 불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즉, 브라만교는 그대로 남은 게 아니라 힌두교로 진화한 것이며 또한 브라만교는 인도의 생활방식, 사회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브라만교-힌두교의 관계는 유대교-기독교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 브라만교는 같은 아리아인이 세운 페르시아(이란)에서는 후에 조로아스터교로 진화하면서 일신교가 되었다.
원래는 캅카스 근처에서 살며 훗날 수많은 파생언어를 남긴 고대언어를 쓰던 유목민족이 서부로 진출하였는데 이들의 종교가 브라만교였고, 경전이 베다였다. 베다에는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여기에 살고 있던 적을 패배시켰다는 이야기가 자주 묘사되는데, 바로 이것들은 유목민이었던 아리아인들이 본 인더스 문명과 그 정복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아리아족의 종교였던 브라만교는 이후 멸망시킨 인더스 문명의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발전을 계속하였다. 힌두교의 주신 중 하나인 시바의 경우도 실제로는 인더스 문명의 토착 신이라는 학계 가설도 존재하며[15],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화신인 크리슈나 역시 인도 토착민의 신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두 신 모두 피부가 검거나 푸르게 묘사되는 점에서 백인종인 아리아인과 전혀 다른 인종적 특징을 보인다. 카스트 제도와 같은 것은 정복민인 아리아인들이 피지배 민족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후 불교나 자이나교와 같은 종교의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기원 후 4-6세기의 굽타 왕조 때 교리가 확정된 이후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발전에 이르고 있다.[16]
브라만교가 힌두교로 전환된 것은 8세기 경 샹카라의 베단타 철학이 나왔을 때로 보고 있다.[17] 샹카라는 대승불교의 사상을 일부 받아들여 범아일여 사상을 주창하였고 불교와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하여 인도에서 불교는 점차 소멸하게 되었다.[18] 형이상학적인 베단타 철학에 의해 다소 사변적으로 흐르던 힌두교는 11세기 경 라마누자가 나타나 신에 대한 대중신앙을 부활시켜 현재와 같은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구글 검색에 올라온 '힌두교-나무위키'에서 인용함)